
“K자형 경제 얘기는 이제 지겨워졌다. 단언컨대 K자형 경제는 끝났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 4일 CNBC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를 두고 이렇게 선언했다. 코로나 이후 미국 경제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말은 ‘K자형 경제’였다. 증시·집값 상승의 혜택을 받은 고소득층은 소비를 늘리는 반면 저소득층은 고물가에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두 계층의 처지가 알파벳 K처럼 위아래로 갈라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경제가 K를 벗어나 ‘C’가 됐다는 주장에 ‘아직 K다’ ‘이제는 E다’라는 반론까지 나오면서 때아닌 ‘알파벳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수렴 시대의 시작?
C를 꺼내 든 대표적 인물은 베선트다. 저소득층이 중·고소득층을 따라잡으면서 벌어졌던 격차가 다시 좁혀지는 모습이 C와 닮았다는 것이다. 그는 하위 25% 임금 근로자의 임금 상승률이 5.5%로 상위 25%의 3배에 달하고, 물가를 감안한 하위 25%의 실질임금도 2% 올랐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호텔 체인 힐튼의 크리스토퍼 나세타 최고경영자(CEO)도 지난달 28일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중가·중상급 호텔 부문의 성장률이 지난해 약 -2%에서 4~6%로 반등했다며 “중산층이 다시 게임에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실제 소비 데이터에서도 K의 두 팔이 좁아지는 모습이 나타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고객 계좌와 카드 거래를 분석한 결과, 지난 7월 저소득층의 소비는 1년 전보다 5.4% 늘어 중산층(4.9%)을 앞질렀다. 저소득층의 세후 임금도 5.2% 증가해 2024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고소득층 증가율을 넘어섰다. PNC은행에 따르면 최고·최저 소득층의 소비 증가율 격차는 지난해 한때 5%포인트에서 지난 7월 0.1%포인트로 좁아졌다. BofA는 이 같은 현상을 ‘대수렴(Great Convergence)’이라고 칭했다.
K종식론? E자형 분석까지
하지만 K 시대의 종식을 말하기엔 이르다는 데이터도 적지 않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2023년 이후 자산 증가는 고소득층에 가장 크게 집중된 반면 물가 상승의 충격은 저소득층이 가장 크게 받았다고 분석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연구진은 지난 5월 발표한 ‘K자형 경제 해부: 무엇이 격차를 만드는가’ 보고서에서 2023년 이후 최근까지 상위 1%의 실질 순자산이 25% 넘게 증가한 반면 중간 40%는 10% 미만 늘었다고 분석했다. 더구나 식료품·주거비 등 필수 지출 비중이 큰 저소득층이 주로 구매하는 상품·서비스의 물가는 2022년 말 이후 전체 평균보다 더 빠르게 올랐다. 고소득층은 자산 증가의 혜택을 더 많이 누리고 저소득층은 상대적으로 높은 물가 부담을 지면서 소비 격차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체감 경기도 ‘K 종식론’과는 거리가 있다. 미시간대가 지난 28일 발표한 조사에서 8월 소비자심리지수는 51.7로, 1년 전보다 11.2% 하락했다. 특히 생활비 상승을 감당할 여력이 상대적으로 작은 저소득·중산층에서 소비 심리 하락 폭이 더 컸다고 조사됐다.
여기에 ‘E자형 경제’라는 새로운 진단까지 나왔다. K가 부유층과 저소득층을 두 갈래로 나눈다면 E는 고소득·중산·저소득층이 서로 다른 높이에서 세 갈래로 움직이는 모습이다. 부유층은 주가와 자산 상승을 등에 업고 소비를 이어가고, 저소득층은 생활비와 빚에 눌려 있으며, 그 사이 중산층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헤더 롱 네이비페더럴크레디트유니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CNBC에 “중산층이 그저 간신히 버티고 있다”며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이 서로 수렴한다고 보려면 상당한 논리적 비약이 필요하다”고 했다.